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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두 임금이 반해 어제를 내린 곳 - 죽서루(竹西樓)


 
삼척에 잘 다녀왔습니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좋은 것도 많이 보고 왔는데요. 삼척의 죽서루도 찾았답니다.


아시다시피 삼척의 죽서루는 관동 8경중 제 1경으로 꼽히는 곳으로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관리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관람은 물론 무료이거니와 앞쪽 창구에서 투어를 신청하시면 친절한 문화관광해설사 분께서 나와서 설명해주신답니다.


저희 대단위 가족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신 해설사님~


저는 죽서루 한쪽에 작은 대나무 밭이 보여서 죽서루인줄 알았는데 '죽서'란 이름은 옛날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하였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죽서루에 올라가시기 전에 먼저 1층의 주춧돌과 기둥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1층 기둥의 나무 길이가 들쑥날쑥 한 것은 인공적으로 터를 닦아 올린 누각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터, 암반 위에 기둥을 세우고 2층만을 평평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지요.
또한 1층의 이러한 원리 때문에 1층과 2층의 기둥 숫자가 다른데요. (1층: 17개, 2층: 20개) 이 때문에 경치도 경치이지만 신선의 머무는 곳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고 합니다.


죽서루에는 신발만 벗는다면 누구나 들어가서 볼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죽서루를 일컫는 명칭을 다양하게 적은 현판부터


16개의 죽서루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으니 얼마나 선비들이 이 곳을 좋아하고 또 노래하길 즐겼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임금이 내린 어제가 가운데에 걸려있는데요.
그 첫번째가 19대 왕인 숙종의 어제입니다. 숙종은 현재 드라마 동이의 깨방정임금으로 활약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아름다운 강산과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왕이기에 '관동 8경'을 처음으로 지정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현판에는 숙종이 쓴 시 ‘죽서루(竹西樓)’와 이 시를 죽서루에 걸게 된 사유를 설명한 삼척 부사 이상성(李相成)의 글이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御製(어제)
 
    硉兀層崖百尺樓(율올층애백척루)     朝雲夕月影淸流(조운석월영청류)
    粼粼波裡魚浮沒(린린파리어부몰)     無事凭欄狎白鷗(무사빙란압백구)

    임금이 지은 시

    위태로운 벼랑 위에 높이 솟은 백 척 누각
    아침에는 구름 저녁에는 달 그림자 맑은 물에 드리우고
    반짝이는 물결 속에는 물고기 뛰어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데
    한가로이 난간에 기대어 백구(白鷗)를 희롱하네
  
  先大王御集中 有關東八景詩    竹西樓卽其一也 今於刊布之日
  以臣相成曾經侍從 亦與宣賜之恩   臣適守玆土 奉讀遺韻
  益不勝摧項之忱 玆敢鋟梓懸揚 與子平陵察訪臣光遠 續題其後 以寓哀慕之誠焉

                                          崇禎紀元後九十四年辛丑五月日


다음은 조선 22대 왕인 정조의 어제입니다.
실제로 정조는 이 죽서루를 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멋지다고 이야기되는 죽서루를 가고 싶으나 궐을 떠나기 어려웠던 정조는 당대 최고 화가인 김홍도에게
죽서루를 그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위 그림이 김홍도의 죽서루입니다. 죽서루 뒤에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듯이 보이는 산과 빙 둘러 나가는 듯한 오십천이 바다와 같이 넓어 보이며,
그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절벽에 고고이 서 있는 죽서루를 본 정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곧 시를 지어 내렸다고 합니다.


    正祖御製(정조어제)
 
    彫石鐫崖寄一樓(조석전애기일루)     樓邊滄海海邊鷗(누변창해해변구)
    竹西太守誰家子(죽서태수수가자)     滿載紅粧卜夜遊(만재홍장복야유)

    정조 임금이 쓴 시 

    돌 다듬고 절벽 쪼아 세운 누각 하나
    누각 옆은 푸른 바다이고 바닷가에는 갈매기 노니네
    죽서루 있는 고을 태수 누구 집 아들인가
    미녀들 가득 싣고 밤 새워 뱃놀이하겠구나

이렇게 신선이 있을 법 듯한 죽서루에서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을 부러워한 정조는 멋진 7언시를 하사합니다.


죽서루에 올가가면 그러한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실상은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카메라에 찍기 민망할 정도로 죽서루 맞은편에는 엑스포 건물마냥 특이하게 새워져 있는 삼척동굴박물관이 보이고
뱃사공이 노를 저어 갔을 듯한 오십천은 70년대에 오십천 수로변경 공사로 인해 지금은 바닥이 보일 지경까지 줄어든 하천만이 보였습니다.


옛 정취를 느끼기에는 너무나 깨는 광경이였지만, 서늘한 누각아래 바람을 맞으며 사각거리며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를 듣고 있으니
여름더위는 절로 잊혀지고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죽서루 담장안 왼편에는 선대 문무왕이 용이되어 바다에 있다가 (문무대왕릉이 울산쪽에 있지요?) 이 오십천에 왔다가 커다란 바위를 뚫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오고 있습니다. 바로 용문바위입니다.


정말 이 단단한 바위에 가운데에 구멍이 뻥~ 나있는데 이 구멍에 소원을 빌면서 지나가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설이 있답니다.
저도 작은 소원을 빌며 구멍을 지나가보았지요.


또한 용문 바위 위에는 다산을 상징하는 모형이 있는데 옛 아낙네들은 이곳에와서 좁쌀을 넣으며 다산을 빌었다고 합니다.

최근 이 곳 죽서루를 예전처럼 주변을 복원하고 물놀이 코스등을 만드는 등의 관광지화를 추진하자고 올라온 사항이 결렬되었다고 합니다.
영화 촬영지라고 (여기서 배용준씨와 손예진씨가 외출을 찍었네요) 중국어 일어로 안내판을 만들고, 줄어든 오십천에 배를 띄우고 다양한 문화 행사로 사람들을 몰리게 할 수도 있겠지만, 문화재의 고스란 보존과 이를 후손에게 물려주길 바라는 문화인들의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다음에 왔을 때도 늘 그대로의 모습이였으면 좋겠네요.